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그것만 알아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텐데......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기 어려울까? 전적으로 개인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태도를 한 번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

 

죽을만큼 힘든 일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죽을 만큼 힘든 건 없다. 그저 그런 게 있을 뿐이다. 그저 그런 상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늘 그저 그런 상태가 될 뿐 이다.

그런데 그저 그런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 다음, '그럼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형편 없는 보고서나 혹은 너무 잘 된 보고서는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류의 보고서는 많지 않다. 대게의 경우 그저 그런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보고서들이다.

이런 보고서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냥 나쁘지 않기 때문에 통과시킨다. 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그저 그런 삶'을 그냥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와도 비슷한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지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그저 그런 보고서'에 대해서 엄격해야 한다. ‘그저 그런 삶’에 대해서 엄격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2009/03/16 15:13 2009/03/16 15:13
"산 속에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글을 써야 한다."
예전에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이 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 흔히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고 공부를 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삶속에서 부딪혀가면서 써야 된다. 가장 바쁠 때 가장 많이 쓸 수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바쁜데 어떻게 글이 써 질까 싶지만, 현장에 있을 때 수 많은 자극이 생기고 그 자극 속에서 좋은 글감들을 발견되기 때문이란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비슷하다.  

최근에 "길 위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라는 말을 접했다.

옛 선현들은 길은 길 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길 밖에서 길을 묻지만 말고
길이라 싶은 길을 찾아 걸으면서
참된 길을 함께 찾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어떤 글이나 말을 접했을 때 가슴에 새겨지는 말귀나 글귀들이 있다.
내 안에서 증폭되어 더 큰 울림이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나의 이전 경험 속에서 그 말이 갖는 위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찾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그 길 위에 있어야 한다.
길 밖에서 그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서는 절대 길을 찾을 수 없다. 
내가 길이라 믿는 그 곳에서 길은 찾아진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그 길이 탄탄대로인지 샛길인지 조금 있다 끝나는 막다른 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내가 얼만큼 걸어왔는지 보면서
그 길이 길임을 확신할 수 있었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 길에서 또 길이 열리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만약,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온 다고 해도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자. 

길 위에서 길을 찾자.  

2009/03/14 20:30 2009/03/14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