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있다', '엣지있게' 란 말이 유행이다.

엣지는 'edge' 라는 영단어를 우리 말로 그대로 옮겨 사용하는 신조어로 '스타일 감이 좋다, 스타일이 개성있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주로 패션, 디자인 등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다.

원래 'edge'라는 단어의 의미가 '날', '날카로움' 등을 뜻하는 것이니 기존의 스타일에 얼마나 날을 세워 차별화했는가로 엣지가 완성된다.


'날'을 세우는 것. 이는 비단 스타일의 완성에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우리가 하는 일에서도 ‘날’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좀 더 날카롭게 날을 세울 수 있을까?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


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섬세함이 요구된다. 누구나 아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차별화된 무엇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아주 작은 파편을 보고도 놀라운 변화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두드러지지 않는 작은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감각과 직관을 동원해야 한다. 작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큰 차이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엄청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현재 자신의 관심사에 얼마만큼의 섬세함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일의 여성학자가 쓴 ‘아주 작은 차이’라는 책은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른 ‘아주 작은 차이’가 불러온 ‘엄청난 결과’에 대한 생생한 보고과 날카로운 통찰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왔다.


근본적으로 질문하기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질문하기 역시 날카롭게 날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철학의 숙명은 앞서 있던 사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넘어서기 위해 철학자들은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러한 넘어서기에도 몇 가지 수준이 존재한다. 당시 지배적인 하나의 사상(플라톤 철학, 데카르트 철학 등)을 넘어서는 것이 있고, 지배적인 하나의 흐름(이성주의, 경험주의 등)을 넘어서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은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사고방식(근대사상)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곧 날을 어디에 세우는가, 어디에 경계를 지을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니체는 철학 밖에서 철학 그 자체를 사유하는 것을 통해 근대까지 이어져 온 기존 철학의 사유방식에서 벗어나는 철학을 창조했다. 니체는 “플라톤의 이데아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대신 “플라톤은 왜 이데아를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질문함으로써 철학에 역사성을 불어넣는 ‘계보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원한다면 어디에 칼을 대고 틈새를 만들어 낼 것인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떠한 질문이 그러한 틈새를 만들어 내고 결국 그 틈새로부터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차이에 주목하는 섬세함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결국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함으로써 새로움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그렇게 탄생한다.

2009/08/20 12:58 2009/08/20 12:58

통계적 공정 관리, 식스 시그마, 전사적 자원 관리, 리엔지니어링.
조금 더 나은 개선안. 진보적인 개념.
우리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지속적인 개선으로 과학적으로 또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개선은 산업 시대에 걸맞는 개념이다. 공장 하나 짓는데 수천억이 들고, 몇 년 아니 몇 십년이 걸리던 때에는 누가 더 잘 개선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품 하나 서비스 만드는 데 불과 몇 개월이 걸린다면 단 돈 몇 백, 몇 천만원이 든다면 게임의 룰은 어떻게 달라질까? 더 잘 개선하는 것으로는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지속적인 개선 활동이라는 것은 임기응변식 대응일 수 있다. 고객이 이걸 불편해 하면 이걸 고쳐 주고, 저걸 불편해 하면 저걸 고쳐 주고, 불만이 있을 때 마다 그것을 땜방식으로 고쳐주는 것에 불과하다. 혁신은 이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려고 할 때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혁신이 나올 수 있다.

고객 중심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그것에 무슨 새로움이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고객 중심이 무슨 의미인지 조차 모르는 것이다. 이는 빅뱅에 맞먹는 사고의 전환이다. 예전에 만들면 팔린다. 일단 만들어 놓고 누구에게 팔지 고민하자는 것에서 팔릴 거 만들자는 것이 market-driven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market-driven을 넘어서 온전히 고객에 집중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consumer-centered이다. 이런 빅뱅적 사고만이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혁신의 시대에 혁신에 필요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 통찰력은 지속적인 개선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객으로 부터 몇 마디 듣는 다고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온전히 고객에 집중하고 고객을 중심에 놓고 고객처럼 생각해야 된다. 그래야 좀 더 개선된 전자 게임이 아니라 종래에 없었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전자 게임이 나올 수 있다.

아직도 어떻게 효율성을 추구할지? 어떻게 운영할지? 어떻게 마지막 남은 1%라도 더 쥐어짜서 효율적으로 될지 고민하고 있는가?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 아닌 상상력으로 기회를 만드는 이 시대에 아직도, 여전히?
 



2009/07/22 18:14 2009/07/22 18:14

카메라와 창의력

from 생각 조각 2009/06/08 21:47
오래전의 미술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진짜같이 그리느냐’ 였다. 실제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자연과학이 발달하던 시대에는 원근법이 발달하였고, 그래서 그림은 점점 점점 실제와 가까워졌다. 실제에 가까운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의 그림이 점점 더 발달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회화사에 커다란 위기가 닥치게 된다.  바로 카메라의 등장이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이제 실제와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회회의 입장에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위기감은 추상 미술로 나타난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에서 논리력, 분석력은 그 사람을 '똑똑하다' 와 '그렇지 않다'로 판단하는 기준이다. 날카로움은 지성인을 대변하는 대명사이며, Critical Thinking이 프로페셔날의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논리력이나 분석력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은 아닌 것 같다. 논리에 근거해서 알고리즘을 짜고 그것을 프로그래밍하면 그것은 표준화, 단순화, 양식화, 자동화 될 수 있다. 똑같이 그리는 그림은 카메라에 대체되듯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논리력과 분석력은 기계에 의해 대체될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창의력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눈물 떨굴 수 있고, 재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서로 연결 되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것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창의력. 그것만이 대체되지 않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아닐까? 
2009/06/08 21:47 2009/06/08 21:47